전통 속에 깃든 혁신의 기풍 유리와 은 술잔이 열어가는 새로운 방식의 사케 즐기기
사케를 마실 때 사용하는 “주기(酒器)” 하면 흔히 도기로 된 돗쿠리나 오쵸코를 떠올린다. 하지만 사케 애호가가 외국인과 여성으로 확산되면서 유리나 은을 이용한 새로운 형태의 주기가 생겨났고 사케를 즐기는 법 또한 매우 다채로워졌다. 새로운 형태의 주기 만들기에 힘쓰고 있는 회사 4곳을 방문해 주기의 매력을 알아보았다.
와인은 맛과 향에 따라 글라스를 바꿔가며 사용한다. 유리로 된 주기가 등장하면서 사케도 와인과 마찬가지로 맛과 향에 맞는 술잔을 선택하는 즐거움이 생겨났다.
에도시대부터 이어져 온 유리 공예를 지켜가는 히로타 글라스 주식회사
에도시대에 시작된 일본의 유리식기 제조. 메이지 시기에 접어들면서 도쿄에는 공장이 늘고, 서양에서 들어온 유리가 일본 장인들의 수작업과 기술을 통해 독자적인 디자인과 문화로 꽃 피게 되었다.
스미다구에 위치한 히로타 글라스 주식회사는 1899년에 창업한 이후로 독창성 있는 유리식기를 만들어 왔다. 장인의 수작업을 고집해 왔으나, 1965년 이후 해외에서 기계로 제조된 저렴한 유리식기가 대량 수입되면서 일본에서는 제조사와 장인 모두 급속히 감소하고 만다.

하지만 히로타 글라스는 지금도 장인의 수작업을 고집한다. 히로타 글라스는 방일 외국인을 타겟으로 한 “도쿄 기념품”을 도쿄도와 공동으로 개발하는 프로젝트에 참가. 도쿄도가 지정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합작을 통해 “궁극의 사케 글라스 세트”가 탄생했다. 2개 들이 1세트로 구성된 술잔 중 하나인 “쓰보미”는 준마이슈의 향과 쌀의 감칠맛을 느낄 수 있는 술잔이다. 또 하나의 술잔인 “하나”. 약간 길쭉한 모양을 한 하나는 잔의 입 부분이 계산되어 있어 화려한 향을 즐기는 다이긴조를 마실 때 꼭 맞는 술잔이다. 여성의 손에도 부드럽게 녹아드는 아름다운 모양, 얇은 유리가 입에 닿았을 때의 섬세한 촉감은 그야말로 장인의 손길만이 이루어낼 수 있는 기술이다.
히로타 글라스 주식회사
도쿄도 스미다구 긴시 2-6-5
TEL:03-3623-4145
http://hirota-glass.co.jp/
에도 기리코의 역사와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는 곳 유한회사 히로타 글라스 크래프트
에도시대 후기인 덴포 시기(1830~1844)에 에도 오덴마초(지금의 니혼바시)에서 비드로(유리) 도매상을 경영하던 가가야 규베 등은 유럽인이 들여온 해외의 유리제품에 기리코 세공을 하였다. 그 기술이 전승되어, 도쿄에서 가공된 것을 “에도 기리코”라 부르게 되었다.
유한회사 히로타 글라스 크래프트가 운영하는 “스미다 에도 기리코관”에서는 역사와 제작 공정, 사용 도구 등을 전시하고 있다. 장인이 하나 하나 기리코 문양을 새겨 가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유리를 부는 것부터 마지막 연마 공정까지 모든 작업을 수작업으로 진행하는 곳은 다른 곳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에도시대부터 이어 온 역사와 기술의 맥을 끊을 수는 없습니다” 히로타 글라스의 대표이사 회장 및 히로타 글라스 크래프트의 사장을 역임하고 있는 히로타 다쓰오씨는 이렇게 힘주어 말한다. 도쿄도의 지원에 힘입어 “에도 기리코”, “에도 글라스”라 이름 붙은 전통공예는 얼마 되지 않는 장인들의 손에 의해 계승되어 왔다.
동 회사의 에도 기리코도 도쿄도의 프로젝트인 “도쿄 기념품” 으로 채용되었다. 전통적이고 에도의 멋을 느낄 수 있는 이치마쓰와 칠보 문양을 조합한 디자인. 그대로도 아름답지만 사케를 따른 후 빛에 비추었을 때의 반짝거림도 황홀하다.
“스미다 에도 기리코관”에서는 전시뿐만 아니라 판매도 실시하고 있다. 클래식한 적색과 청색 글라스 외에 다양한 색채의 에도 기리코는 물론, 바로 옆에 우뚝 솟아 있는 도쿄 스카이트리를 기리코 모양으로 표현한 모던한 느낌의 글라스도 있다. 당신의 마음에 꼭 드는 글라스를 발견할 것임에 틀림없다.
유한회사 히로타 글라스 크래프트
도쿄도 스미다구 다이헤이 2-10-9
TEL:03-3623-4148
http://www.edokiriko.net/
주기의 매력을 전세계에 알리는 기모토 글라스 주식회사
도쿄 오카치마치. 대로변에 위치한 유리창 너머로 가득 진열되어 있는 유리 그릇들에 나도 모르게 발길이 멈춘다. 기모토 글라스 주식회사의 매장 겸 쇼룸.

기모토 글라스는 1931년에 창업한 이후 유리 그릇을 전문으로 하는 도매업을 해 왔다. “제조사나 장인들에게 상품을 입고해 백화점이나 소매점에 파는 일을 해 왔습니다”라는 3대 사장 기모토 세이치씨.

장인들의 기술로 “좋은 제품”은 완성된다. 하지만 기모토씨는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바로 디자인이었다. 그래서 시대에 걸맞는 에도 기리코를 표현해 줄 디자이너와 장인, 공장과 함께 신작 제조에 착수했다. 그리고 2년의 시간을 들여 흑색을 모티브로 한 에도 기리코 “KUROCO”가 탄생했다. 역사를 수 놓아 온 에도 기리코가 장인의 기술로 탄생한 아름다움은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모던하고 스타일리쉬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아이디어 맨인 기모토씨가 다음으로 주목한 것은 사케다.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사케 애호가인 기모토씨는 마음 맞는 디자이너와 술잔을 기울이다 이런 질문을 받게 된다. “사케 마실 때 골라 쓰고 싶은 글라스가 있나요?”

기모토씨는 다양한 부류의 술을 즐기기 위한 글라스 제조에 착수했다. 일본 각지의 양조장을 방문해 프로 소믈리에들을 통해 리서치하고 사케의 향과 맛을 돋우면서 손에 착 감기는 잔 형태를 추구했다. 또한 흑색 에도 기리코와 마찬가지로 디자이너와 크리에이터의 센스를 빌어 현대 라이프 스타일에 맞는 스타일리쉬한 디자인으로 완성했다. 이렇게 탄생한 유리 주기는 현재 약 120종에 달한다. “하나”, “소”, “미야비”, “준”, “와”의 다섯 가지 타입으로 분류해 어떤 사케에 어울리는 술잔인지 알기 쉽게 제안한다.

“백문이 불여일견이죠. 일단 한 번 체험해 보세요.” 기모토씨의 재촉으로 같은 술을 “구이노미”라 불리는 술잔, “소” 글라스, “하나” 글라스로 비교해 가며 시음해 보았다.
구이노미에 담긴 술을 입에 머금자 쌀의 향과 맛보다 알코올감이 강하게 느껴졌고 뒷맛은 약간 쌉싸름했다. 그런데 ”소” 글라스로 마셔 보니 맛과 향 모두 깔끔하고 스마트한 인상을 받았다. 이에 비해 ”하나”는 글라스를 입에 가져다댄 순간 화려한 향이 콧속을 간지럽히며 둥그스름한 쌀의 감칠맛이 입 속에서 뭉근히 퍼져나갔다.

장인, 디자이너, 양조장, 음식점과 힘을 합해 술 소비자와 연결한다. 기모토씨는 일본 국내는 물론 세계를 향해 진화하는 일본의 전통 문화를 끊임없이 전하고 있다.
그리고 주기의 매력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기모토씨가 움직인다. 이 때도 미국, 중동 지역, 아프리카로 출발을 앞두고 있었다.

“도쿄에서 일본 각지로, 나아가서는 세계로. 다양한 사람들과 인연을 맺으며 제품 만들기의 보람과 문화를 전하고 싶습니다”
기모토 글라스 주식회사
도쿄도 다이토구 고지마 2-18-17
TEL:03-3851-9668
https://kimotoglass.tokyo/
은 술잔 등에 재미있는 디자인을 더해 사케를 눈으로 즐길 수 있는 주기도 등장했다.
전통공예품 “도쿄 은기”를 더 가까이 주식회사 모리 은기 제작소
통통통, 통통!

1200도에 달하는 고온의 화로에서 녹인 은을 서서히 식혀 얇게 만든 판. 이것을 둥글게 잘라 작업대에 놓고 장인이 나무 망치나 쇠망치로 섬세하고 리드미컬하게 두드리면 은판은 어느새 입체적으로 변모해 투박한 손 안에서 아름다운 곡선의 구이노미가 탄생한다.

모리 은기 제작소는 1927년에 긴자의 명인 다지마 가쓰노스케씨에게 사사 받은 모리 젠노스케씨가 단금사(鍛金師)로서 독립한 후, 당시의 시타야구(지금의 다이토구)에서 창업한 회사다.
“에도시대부터 다이토구에는 은판을 두들겨 모양을 잡아가는 단금사, 거기에 장식을 새기는 조금사(彫金師), 연마 등의 마감 작업을 하는 채금사(彩金師), 나아가서는 완성된 상품을 넣을 오동나무 상자를 만드는 장인 등, 은기와 관련된 장인들이 많았습니다. 지금도 추측컨대 은 제품의 90% 이상은 도쿄에서 만들어질 것입니다. 도쿄는 은 제품의 최대 생산지인 것이죠”라는 5대 사장 모리 마사루씨.

모리씨는 창고에서 물건을 찾다가 우연히 무언가를 발견한다. 바로 “교쿠하이(玉盃)”라는 술잔이었다. 교쿠하이에 사케를 따르면 잔 속에 둥그스름한 구슬 모양이 생긴다. 마치 잔 속에 떠오른 보름달처럼. 달을 들이키는 듯한 조금은 환상적인 기분을 맛볼 수 있다.
모리씨는 더 큰 구슬 모양이 생기는 은기 연구를 진행하는 한편, 디자이너와 공동으로 새로운 교쿠하이를 만들었다. “교쿠하이 나가레”는 잔의 측면에 줄무늬 형상을 망치질해, 술을 따르면 강의 흐름과 잔물결을 연상시키듯 술이 출렁이고 그 속에 둥글고 아름다운 구슬 모양이 생긴다.
또 하나의 작품, 모리씨의 아이디어와 디자이너의 디자인, 장인의 기술이 합쳐져 탄생한 교쿠하이가 바로 “우메이치린”이다. 매화 모양으로 완성된 은기의 안쪽에 천연 옻을 바른 술잔이다.
“‘이치린(一輪)’이라는 말에는 ‘꽃 하나’와 ‘보름달’이라는 뜻이 담겨져 있어요. 매화 모양을 한 술잔에 술을 따릅니다. 그러면 마치 보름달 속에 매화가 비친 듯 보이죠. 홍백(매화와 보름달)이 모두 갖춰져 경사스런 자리에서 술을 한층 더 돋보이게 하는 술잔입니다”라며 모리씨는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 “우메이치린”은 에도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장인의 섬세한 수작업의 매력을 현대의 디자이너와 합작하여 국내외로 전하는 도쿄도의 디자인 프로젝트 “도쿄 수작업”으로도 선정되었다. 전통과 혁신이 결실을 맺은 교쿠하이인 것이다.

모리씨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끝맺음 한다.
“술은 그 술이 빚어진 곳에서 마시는 것이 가장 맛있습니다. 도쿄에서는 도쿄의 술을 즐겨 보셨으면 해요. 물론 도쿄 은기의 술잔으로요”
주식회사 모리 은기 제작소
도쿄도 다이토구 히가시우에노 2-5-12
TEL:03-3833-8821
https://moriginki.co.jp/
(사진: 야마다 히데타카 글: 나카쓰미 아사코)












